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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 칼럼

온라인 교회, 온라인 예배

by 길목교회 2022. 3. 11.

<시리즈칼럼>

온라인교회와 온라인예배 ①

이길주 목사


1. 코로나로 촉발된 온라인예배 논란

온라인교회는 진짜 교회인가?

코로나 기간동안 세계 교회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상 최대 규모로 교회들이 비대면 예배를 드렸다. 비대면으로 가정에서 예배했다기보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한 온라인예배를 드렸다고 말해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예배한지가 2년이 넘으며 새로운 교회의 형태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었다. 바로 온라인교회다.

온라인교회에 대한 문제는 이전부터 논의가 되었고 논란이 되었지만 이번처럼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논해지는 것은 처음이다. 이미 한국교회는 온라인교회는 안 되는 것으로 기정 사실화 했기 때문이다. 주일성수에 대한 강조점과 그에 대한 축복의 메시지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국교회에 온라인교회는 말도 안 되는 시도였을 것이다.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될 때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 대면예배가 금지되자 그건 진정한 예배가 아니라며 수많은 교회들이 혼란을 겪었고 반대 메시지를 내기도 했었다.

온라인교회, 즉 디지털의 온라인 가상의 공간에서만 활동이 이루어지는 교회는 진짜 교회일까? 그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온전한 예배드림이 가능한 것일까? 그 교회의 성도로 지내는 것은 위험한 일은 아닐까? 그 교회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시대적 변화에 따라 온라인교회에 대한 문제가 이슈화 되었지만, 사실 이 문제는 우리가 먼저 앞서 준비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현대인들의 삶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생활하는 비율이 과거와는 획기적으로 달라졌고 그 시대에서 살아온 현대의 젊은 세대의 인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교회를 책임질 세대에 대한 연구와 그 세대에게도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온전히 예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이다.

온라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들에게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실제가 아니고 현장성을 담보하지 못하여 온라인교회와 온라인예배는 진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설득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바람직한 성경적 교회와 예배는 어떤 형태이어야 하는가의 문제에 앞서, 선교적인 측면에서 온라인교회는 어떤 면에서 교회일수 있을지 아니면 왜 교회가 아닌지를 분명히 밝히고 그 결과에 따라 그에 따라 행해야 할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시리즈 글에서는 우선 여러 학자들의 온라인교회와 예배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다루어보고 이후 실질적으로 온라인교회와 예배에서 예배함에 대해 논란이 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2. 김영한 박사의 글 - ‘온라인 교회와 예배의 결핍성’

온라인교회는 디지털 영지주의다?

첫 번째로 기독교학술원 원장인 김영한 박사가 쓴 ‘온라인 교회와 예배의 결핍성 – 디지털 영지주의의 위험성’이 집고 있는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얼마전에 우연히 김 박사가 쓴 이 칼럼을 읽게 되었는데, 온라인교회와 예배에 대해 위험성을 지적하며 반대하는 입장에서 쓴글이다. 그가 쓴 글의 주제 핵심과 드러난 문제점을 살펴본다.

그는 글 서두에 이렇게 썼다. “... 온라인 화면에서는 현장의 그림을 보아서 아는 것은 현지에서 직접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손과 발로 만지고 그 자리에서 걸어보고 현지 자연환경을 느끼고, 현지 언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을 만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 온라인 예배의 문제점은 예배의 현장성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현장 예배가 없고 디지털 예배만 드리게 될 때 우리 신앙의 현실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나 교회당이라는 처소에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거기에 임재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온라인 예배가 관습화 될 때 기독교 신앙은 차츰 생동성이 상실되고 하나의 영상을 보는 것과 동일시될 위험성이 있다.”

김 박사는 현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온라인교회와 온라인예배는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큰 악영향을 끼쳤던 가현설을 주장했던 영지주의와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영지주의가 디지털을 입고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여 ‘디지털 영지주의’라고까지 표현했다.

위 내용을 성경에 비추어 입증하기 위해 그는 <요한일서 4:2~3절>을 인용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이 말씀은 영지주의 이단에 대응하기 위한 요한의 메시지였는데, 이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심에 대한 내용을 강조점으로 삼았다. 즉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그 당시 영지주의였고, 오늘날 온라인예배와 온라인교회는 이 육체 곧 현장성을 벗어난 것이므로 디지털 영지주의와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잘못 인용하여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있다. 사도 요한이 앞서 말씀하신 내용은 그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신성만 강조하고 육체로 오신 인성은 부인하였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인간이시기도 하였다는 명확한 선언을 한 것이다. 즉 예배자의 예배 장소가 문제가 아닌 우리가 믿는 신앙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존재 양태에 대한 선언을 한 것이다.

위 말씀이 적절히 인용되려면 온라인교회와 온라인예배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연약하고 죄에 물들기 쉬운 육체를 가진 분이 아니며 영으로만 계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오늘날 어느 누가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단 말인가?

온라인교회의 논점은 우리가 그동안 예배해왔던 장소가 아닌 미디어의 도움을 입어 온라인을 통해 예배하는 것에 대한 문제여야만 한다. 건물 안에서 함께 모여서 예배하지 않는 교회는 온전한 교회일까? 온라인을 통해서 예배하는 예배는 진짜 예배일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숙고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 김 박사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온라인교회는 진정한 선교가 불가능하다?

또 한 가지 큰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온라인예배와 교회는 온라인이라는 가상공간에서만 이루어지기에 현장성을 상실하여 진정한 전도와 선교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그는 “선교사가 현장에 몸으로 들어가 현지인들을 만남 없이 선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진정한 선교가 이루어 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역시도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 400년의 시간, 헬라제국과 로마제국이 교대하던 시기, 성경을 읽어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은 무엇인가?

헬라제국의 필립2세가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그 당시 공용어인 헬라어로 번역하여 70인역을 출판했다. 그 성경은 로마시대 수많은 신들을 섬기고 살아가던 이방인들에게 유일신 하나님을 알게 해주었고 나아가 그 하나님에 매료돼 하나님을 믿는 자들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신약시대에 ‘경건한 사람들’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에디오피아 내시가 그런 사람일 수 있고, 백부장 고넬료 역시도 그와 같은 과정을 경험했을 수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된 것은 현장인 성전에 가서 예배하고 말씀들어서 변화된 것이 아니라(이방인으로서 그럴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배포된 성경을 읽고 그렇게 되어진 일이었다.



성도의 교제가 상실된다?

비대면 온라인예배에서는 성도의 교제가 상실된다고 주장한다. 온라인에서 성도는 그냥 영상을 보는 하나의 관객으로 변모하고 성도들 사이에 인격적인 교제가 상실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성도의 사귐은 서로 간의 만남이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적인 장(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대면 예배는 이런 교제가 불가능 한 것으로 본다.

김 박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기술 발달의 변화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지 이것을 간과하고 있다. 오늘 우리 현대인들은 온라인을 통해서 대부분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안에서는 교제도 포함된다. 지난 2년동안 화상회의 시스템인 ZOOM을 통해서 성도들의 교제는 부족할지라도 충분하게 이루어졌다. 소그룹모임과 성경공부, 심방과 기도, 상담 등이 온라인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그것은 실제가 아니니 가짜라고 하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메타버스 세계가 열리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느끼고 보는 것을 온라인에서 그대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발전의 속도는 정말 빠르다. 앞선 기술 기업에서는 뇌파만으로 온라인상에서의 활동을 구현해내기도 하고, 근육의 움직임을 감지해 온라인상에서 그대로 재현해내기도 한다. 성도의 교제라는 것을 김 박사가 지칭한 수준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정도는 이제 곧 있으면 충분히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런 기술 발달이 아니어도 우리는 이미 전화와 문자 편지 등으로 충분히 심적 영적 교제를 나누고 있는 상태이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성도의 교제가 상실된다는 말은 현재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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