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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 칼럼

“하나님 안됩니다. 포기할수 없습니다”

by 길목 2021. 11. 27.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스물 네 살 때

선교단체에서 했던 사역 이야기입니다.

1999년 겨울 사역을 마치고

 

내게 있어 사랑에 대한 의문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인간 세상에 진실된 사랑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컸고 그와 같은 사랑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시고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부탁하신 그 사랑은 너무나 멀리 있는 다소 피상적인 것이었다.

 

선교단체에서 그동안 진행했던 여러 사역들을 통해서도 여러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 좋아서 사역을 시작했지만, 사역 후에는 어디에선가 커다란 절망감 같은 것이 늘상 있어왔다. 내가 제대로 사랑하는 것인가? 나는 사랑할 수 있는가?

 

선교회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 겨울 사역에 선발대로 내려가달라는 부탁이었다. 우리는 여름에는 한반도 교회가 없는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겨울이면 여름에 만났던 지역의 아이들을 서울로 데려와 사역하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

 

여름에 내가 맡았던 그 지역의 선발대로 내려가달라는 것인데 여러 바쁜 일정과 여름에 그 지역에 갔을 때 그리 좋은 기억으로 마무리 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교회 지역에 복음을 전하려는 기대감으로 내려갔는데 내가 맡은 마을에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가정들이 많이 있었다. 사정이 그렇다면 기뻐해야 하는데, 나는 복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아쉬움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거절하려고 하는데, 그 지역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간절히 부탁해왔다. 할수 없이 가겠다는 답을 주었다.


선발대로 몇몇 사람들과 함께 아영면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시간이 없어, 각자 맡은 마을로 흩어져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어르신들을 접촉하기로 했다. 나는 우선 내가 맡은 마을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윗안골과 아랫안골이라는 마을에 배치되었다. 그곳을 맡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배치된 마을이었다. 여름에 그곳에서 사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들을 알지도 못하고 아이들도 알지 못해서 데려오는데 힘들 것 같았다.

 

역시나 알지 못하는 내가 가서 이야기하니 어르신들이 도무지 들어주지 않으셨다. 아이들도 안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너무도 안타깝고 답답했다. 그 마을을 다 방문한 후에 실망감과 함께, 드디어 내가 맡은 서정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시골은 해가지면 다들 집으로 들어가셔서 빨리 주무시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없었다. 길게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다급한 마음으로 여름에 그린 마을 지도를 보며,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모든 집을 다 돌았는데 놀랍게도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모두 보내준다고 약속을 하셨다.

 

역시! 여름에는 실망이었던 마음이 기쁨으로 변했다. 여름 뿌리기 사역때에 내가 속한 진이 맡았던 지역은 마을 분들 중 16분이나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이었다. 그때에는 그것이 복음이라는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간 우리들에겐 너무도 실망스럽게 다가왔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기쁨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날을 기도로 접고 아침을 맞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는 일정이다. 어제보다 더 바쁘게 때문에 아침부터 열심히 뛰어 다녔다. 드디어 서정에 도착. 기쁜 마음으로 어제 약속을 받아두었던 집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오늘 아이들과 함께 떠납니다. 조금 있으면 갈터이니 준비시켜 주시고 기다리시면 차가 올겁니다.”

 

그런데 나의 기쁨에 찬 잔잔한 말에 요동을 치게 만드는 무서운 한마디가 내 던져졌다.

 

“우리 애는 못갈 것 같네요.”

 

“아니 왜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친구들도 하나도 안간다네요. 그리고 낼모레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못갑니다.”

 

그 말과 함께 문을 닫으셨다. 그렇게 허망할때가.... 그때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은 아이를 못데려간다는 안타까움보다 그 어르신에 대한 불신이었다. 마을에서 믿음을 가지신 분이었고 어제 보내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모습은, 내 마음속에 있었던 사랑에 대한 부정적인, 사람은 온전히 사랑할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다는 흐린 기억으로 이어졌다. 사람에 대한 실망과 진정한 사랑없음에 대한 뼈저린 확증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생각은 나에게로 옮겨왔다. 나 역시도 그와 같은 범주의... 사실은 나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확증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 사역은 실패로 끝나는구나...’

 

허탈한 마음을 가지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마지막 집으로 걸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나도 모르게 기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나님, 안됩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기도는 내 안의 성령님께서 주신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마지막 집이었다. 0이라는 친구인데 중2학년인 친구였다. 집에 들어가자 어머님과 아버님이 나와서 맞아주셨다. 그리고는 나의 마음을 찢는 한마디를 하셨다.

 

“어제 연락을 드릴려고 했는데, 형0이가 안가겠다네요.. 그래서 지금 학원 가버렸어요.”

 

그 말은 곧 실패였다. 완전한 실패... 처절한 패배였다.

 

하나님!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난 그때 무언가 모르는 강한 열정에 사로잡혔던 것을 기억한다. 무작정 방에 좀 들어가겠다는 말을 하고 방안에 앉아버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사정을 했다. 꼭 가게만 해달라고, 34일을 형0이 인생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만들어 주겠노라고 확신있게 그리고 담대하게 말씀드렸다. 그러기를 10분이 지난 것 같았다.

 

갑자기 아버님이 전화기를 드셨다. 그리고 형0이가 다니는 면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전화를 하셨다.

 

“형0이 너.. 학원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조금 빨리 와라. 아니 여기 올시간 없으니까 면에 너 친구있지? 친구집에서 곧바로 다녀와”

 

난 아직도 그 말을 잊을 수 없다. 아이들을 싣고 갈 차가 서있는 면에서 곧바로 34일을 다녀오라는 아버님의 말씀.. 난 잊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은 또 여러군데 연락을 하셨다. 0이 친구 부모님께 연락을 하셔서, 0이도 가니까 친구들도 보내라는 말씀이셨다.

그 때 그 순간으로 인해서 7명의 아이들과 나는 서울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여기에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 기뻤던 것은 차가 떠나오려는 순간이었다. 0이가 다른 마을에 사는 친구도 온다고 했는데 그곳의 차가 이미 떠나버려서 못오게 되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누구냐고 물으니 은0이라고 했다.

0이 집에 갔을 때 나는 은0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아버님한테 욕만 듣고 쫓겨났었다. 마을에서 유독히도 기독교를 싫어하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 집에 있는 은0이가 간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얼른 차를 보내 데려왔다.

0이는 나를 보더니 아빠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0이를 안심시키고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0이로 인해서 아빠가 변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서울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34일의 일정은 너무도 유익하고 좋은 시간들이었다. 이제 사역도 접어 들어가고 내 짝궁 용0이도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금요일! 아이들과 함께 정동문화회관에서 갖게되는 한마당행사 시간.

고등학교 아이들은 행사 준비를 위해서 우리의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는게 내내 불평이었는데, 공연을 위해 빡빡하게 움직이는 일정속에서 아이들이 무척이나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아이들에게 가보니 짜증을 내었다.

고등학교 아이들은 워십댄스를 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약간이나마 완성된 모습으로 무대에 서려고 하니 아이들의 짜증은 말로 할수 없었다. 그중에 준0라는 우리 서정 마을에서 온 녀석이 나 한테 그랬다.

 

“기억에 남게 해 주겠다는게 이거에요?”

 

내가 그 녀석을 데려오기 전에 그 아이에게 했던 말이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컹 내려 앉았다. 이제 떠나갈 시간이 다가오는데 이렇게 끝나고 이런 상태로 가버리면 그 아이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이 심히 걱정이 되던 때에 그 날 그 모습을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기0이라는 제일 큰 녀석이 내게 물었다.

 

“이 사람들이 우리 보려던 여기 온거여요? 아니면 다른 거 보려 온건가요?”

 

“이 사람들 다 너희들 모습 보려고 온거야!”

 

순간 그 녀석 눈에는 흠칫 놀라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머리가 다 큰 녀석이 생각하기로는 사람들이 그곳에 무엇 때문에 왔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자신들은 바로 어제부터 단 몇 시간밖에, 그것도 장난으로 짜증내며 연습한거 밖에 없는데, 으리으리한 공연장에 여러사람들이 찾아온 목적이 자신들을 보러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공연을 마치고 마지막 만찬을 준비할때까지 나는 준0가 걱정이 되었다. 녀석이 공연때에 했던 말이 아직도 마음을 찔렀기 때문이다. 만찬이 시작되고 짝궁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고 서로를 꼭 껴안고 찬양을 드리는 시간이었다. 목사님께서는 모든 친구에게 인사를 하자고 하였다. 그래서 한명씩 돌아가면서 아이들과 만나 인사를 하는데 준0를 만날 차례였다.

그 앞에 서니 준0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두 손을 가리고 울고 있었다. 그것이 무슨 눈물이었을까? 나도 알고 준0도 알았다. 너무 감사했다. 나도 흐느껴 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 이유도 대가도 없이 그저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사랑으로 사랑하기만 했던 34일의 시간. 시골에서 여러 낙후된 환경과 삶의 여건으로 인해 주인공 되어 본 적이 없던 그 아이들. 그런데 서울에서는 그 아이들은 우리들의 주인공이었고 우리들은 그 아이들만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잘 대해줄까 이상함과 의심이 여러 차례 교차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내 마지막 날, 만찬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만 것이다.

 

0를 부둥켜 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좋은 일이 있으리라~’ 이 찬양을 함께 불렀다. 반복해서 여러차례 아이도 나도 계속 불렀다.

 

그래, 예수님을 만나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거야.....’

 

속으로 준0를 위해 기도하면서 만찬을 마칠수가 있었다. 물론 겨울 사역에 내 짝궁으로 지정된 용0이와도 감격스러운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0이는 꼭 좋은 목사님이 되세요라고 눈물지으며 말했고, 나는 용0이에게 꼭 훌륭한 공군 조종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집으로 내려가는 차에 올라탄 아이들은 이내 들떠서 반갑게 이야기하다가 집으로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이대로 떠나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아이들의 빈 자리에는 예수님이 함께 해주실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 마음에 부족한 나로 채워지는 것보다, 이 세상 가장 놀라우신, 우리를 가장 사랑해주시는 예수님으로 채워져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우리는 세례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고 사라져야 하는 들러리와 같은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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