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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 칼럼

메타버스, 공유 그리고 교회

by 길목 2021. 10. 30.

# 메타버스와 변화

페이스북이 회사명을 ‘Meta’로 바꾸었다. 대표 주커버그는 ‘새로운 사회는 메타버스 사회가 될것이라며, 소셜네트워크 회사가 아닌 메타버스 회사로 기억해달라’는 말을 했다. 페이스북 메타버스 총괄인 비샬 샤는 '가상현실 헤드셋은 2023년이면 연간 1000만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전 세계에 1000만 이상의 가상현실 메타버스 사용자가 등장할 때가 해당 플랫폼이 급격히 성장하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년 뒤의 미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서비스(인스타그램, 페이스북)를 제공하는 회사가 이와 같은 선언을 하니 메타버스의 세계가 마치 코 앞에 있는 것처럼 긴장감이 돈다.

지난 코로나 시기동안 메타버스는 핫 키워드여서 온 국민이 메타버스를 이야기하고 저마다 이 이야기로 컨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하나 이 분야에 구체적인 청사진이나 사업적인 역량을 쏟아부어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여주진 못했다. 그래서 메타버스 관련 책의 아마추어적인 내용에 대한 혹평도 있었고, 언론이 제공하는 몇 단어 중심으로 입에 멤도는 수준의 내용 이상을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더했다.

어느 전문가가 지적했듯이 코로나 시기가 아니었다면, 메타버스는 지금이 아닌 1~2년 이후에나 시작되었을텐데 갑자기 온라인으로 강제 접속되는 삶이 시작되고 비대면의 일상속에 충분히 가능한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 변화의 시대, 교회

사회의 변화가 이와 같다면, 이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어떠해야 할까? 이 전제가 가장 중요하니 다시 말을 해보겠다. 교회가 교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닌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가 이와 같은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사회의 변화를 연구하고 그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전자제품을 이용하다 보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일어난다. 윈도우나 애플의 OS가 업데이트 되면 이전 버전에 맞게 개발된 제품은 갑자기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경우, 제품회사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맞는 패치를 제공해주어 사용에 문제가 없게 해준다. 그렇지 않은 제품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또 선택에서 밀려난다. 새로운 오퍼레이팅시스템(OS)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제품은 더 이상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

교회의 모습을 이와 비교하면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교회가 사회에 맞게 재맞춤하지 않으면 시장에서는 더 이상 교회의 제품(복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아니 출시조차 되지 않는다. 중간 도매상도 그것을 시장에 내놓지 않고 소비자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수 십년 그렇게 해오다보니 교회의 충성스런 교인들이 교회의 복음으로 시장에 나가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그들을 통해서 그 복음이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않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교회는 그냥 존재했었던 것으로만 이해될 뿐 더 이상 생명력있는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는 그와 같은 역할과 기능은 사라진다.

 

# 교회의 준비

메타버스 시대에 들어선 우리 사회, 아니 이제는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가 동시에 메타버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메타버스! 기술은 도구에 불과하다. 기술이 도구를 넘어서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사회, 문화, 세계 전체를 이룰날도 머지 않아 이 말 자체가 어폐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는 기술을 본질 전달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도구가 변한 시대에 이 도구에 맞게 어떻게 우리의 본질, 즉 복음을 잘 세팅하고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과거 시장과 정류장에서 복음을 소리로 전달했다면, 이제는 온라인에서 소리와 영상을 통해서 복음을 전달해야 한다. 영화가 상상속의 현실을 실제와 같이 구현하여 사람들을 깨우치고 있듯이, 성경속에 있는 과거의 이야기를 오늘날에 더 실제적인 이야기로, 진리로 전달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심령이 깨우침을 받게 해야 한다.

 

# 오프라인? 온라인!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떨고 영화관에서 문화를 경험하고 멋진 거리를 거닐며 감흥을 느끼던 시대의 패러다임은, 우리 인간의 본질이 오감을 통해서 느끼는 것이 최고라는 사실을 전달해줄뿐, 새로운 시대속에서의 활동은 준비할 수 없게 만든다. 불과 5년전에는 가정에서 회사에서 PC를 스마트폰보다 더 사용했는데, 오늘 지금은 스마트폰을 더 많이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스마트폰이 PC보다 더 비싸고 사양도 더 좋다. 스마트폰의 모빌러티(이동성)가 현대인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다. 잠시 잠깐의 남는 시간이 있다면 사람들은 쉬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ON-LINE한다. 늘 접속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소비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체류하는 시간이 더 많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곳에서 더 많이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온라인에 더 투자하고 더 많은 컨텐츠를 생산해내고 그곳을 이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은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보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시간이 더 많다. 동료들, 친구들의 소식을 만나서 확인하는 비율이 높은가? 아니면 SNS를 통해서 더 많이 확인하는가? 뻔한 답이 나올 것이다. 맞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통해서 대화하고 사진을 보고 영상을 확인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그것이 익숙해져서 이제는 소통하는 사람들과 가깝다고 느낀다. 온라인에서 익숙하게 사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 도구가 친근하게 느껴지면서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비용을 쏟으면서 사는데도 그걸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교회는 아직도 오프라인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곳에만 돈을 쓰고 있다. 건물을 짓는데, 오프라인 모임과 행사에 돈을 쓰고 있지, 온라인 공간에 그와 같은 비율로 쓰는 교회는 보지 못했다. 다음 세대의 교육을 위해 수십억짜리 건물을 세우는 교회는 있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다음세대를 위해서 수십억짜리 프로젝트를 위해서 돈을 쓰는 교회를 본적이 있는가? 아직 우리의 교회들은 온라인 공간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곳이 시대적으로 가장 중요한 전도지이고 사역지이며 사명지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개인의 삶은 이미 익숙한 온라인 중심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몇 몇 대형교회가 오프라인교회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라는 정부의 방침에 맞서 들고 일어난 적이 있다. 그건 온전한 예배가 아니라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어느 예배학자의 글에서처럼, 이미 그 대형교회는 온라인을 시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자모실에서 TV를 통해서 예배하는 성도들은 이미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을 통한 예배를 드리고 있었을 뿐이다. 또한 마이크를 통한 전류의 흐름을 통한 설교의 청취는 이미 오프라인을 벗어난 개념이다. 많은 비용을 쓰면서 기독교방송을 통해 설교를 송출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진짜가 아닌 온라인을 통해서 전해지는 설교와 예배를 통해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길 바라기는 한 것일까?

 

# 오프라인의 핵심은 건물교회

교회가 아직도 오프라인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이유는 한국교회가 그동안 쏟아부은 막대한 재정이 건축에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교회는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부동산 붐으로 건물을 건축하는데 올인했다. 2012년 종교단체 중 기독교가 금융기관에 대출한 돈만 무려 4조원이 넘었고 종교기관 대출의 90%를 차지하는 비율이었으니 한국교회의 부동산 사랑은 너무도 확실하다. 더불어 아파트촌을 중심으로 한 선교로 대형교회들이 등장하면서 교회의 건물건축과 대형화 현상이 선교와 접목되어 건물중심의 신학과 신앙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으로 형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로 오라는 구호가 전도가 되어버린 현상도 나타났다. 단시간의 복음전도보다 교회 시스템속에서 보살피며 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는 하나, 교인들이 복음을 소개하고 전하는 기본기를 잃어버린 현상은 교회가 건물과 동질화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회는 공유시대다. 공유오피스가 인기이고, 공유자동차, 공유숙소, 공유플랫폼이 시대의 아이템이 되고 있다. 제한적인 자원을 나누어 써야 하는 현실적인 한계점에 대한 문제인식도 있지만, 이제는 온라인 중심의 시대속에서 현대인들이 한 곳에만 머물러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현상의 방증이기도 하다. 오프라인 한 곳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던 시대는 가고, 어디를 가든 온라인 되어 있는 내가 중심이 되는 시대가 공유시대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교회는 지역 사회 한 곳에 번듯한 건물을 만들어 놓고 성도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미 교회는 사람들에게 호감도, 신뢰도, 친밀도를 다 잃어버린 상태다. 이중적이고 사기칠 것 같은 이미지가 현재 한국교회 이미지라고 통계 결과가 말해주고 있는 시대다. 비기독교인이 십자가 걸린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의 수는 수학적으로만 의미있는 결과밖에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교회 교인이라는 이미지는 사회생활에 불편함을 주는 상태이고, 교회로 데려가는 것은 광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에 딱맞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 코로나 시기 1만명이 들어가는 대형교회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한동안 건물교회는 아무 소용없는 공간이 되어 버렸고, 한국교회가 그동안 중시해왔던 건물은 사회에도 교인들에게도 어떤 영향력도 끼칠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교회 건물은 교인들이 모이는 공간이고 창조적인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기본 베이스다. 육신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몸은 발 디딜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이 땅에 사는 교인들은 교회라고 불려지는 건물 공간을 필요로 한다. 교회는 그곳에 모여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교육하고 선교하고 교제를 이루어왔다. 건물은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이고 그동안 충실하게 그 사명을 다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공간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앞으로는 더더욱 못하게 될 것이다. 이미 2년동안 그와 같은 일이 현실로 일어난 상황을 온 교인이 경험했고 앞으로 메타버스 시대에는 그와 같은 현상이 또 나타날 것은 다 예측할 수 있다.

오프라인 공간은 고정적인 공간으로서 그 위치에서만 존재함으로 의미를 다하지 못하고 네트워크되는 공간으로서만 존재 하게 될 시대가 올지 모르겠다. 어느 지역 서점의 창고에 있는 책은 판매되지 못하지만 온라인 공간에 공유되어 있는 책은 판매된다. 아마존에서는 어느 누구도 찾지 않는 희귀한 책들이 매년 일정부수가 팔려나가고 있고, 그와 같은 대중적이지 않은 제품의 판매 지출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교회 공간은 더 이상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건물 크기에 비례해서 영향력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브랜드의 허상에 젖어있다면 그 시기가 조금 더 유지되겠지만, 기술 발전이 좀 더 빨라지면 그와 같은 현상도 이내 사라지고 말 것이다.

 

# 메타버스 시대 교회의 사명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온라인 중심의 컨텐츠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온라인에서 복음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설교 컨텐츠로는 안된다. 설교는 이미 올드미디어이고 사람들이 더이상 설교하지마로 표현하는 낡은 미디어로 전락해버렸다. 카카오톡 대신에 편지로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체국의 존폐를 걱정할 시기에 있는게 현실이다. 새로운 미디어로 새로운 독자들 청자들에 맞게 탈바꿈해야 한다.

한국인들 83%가 매일 1시간 이상씩 꼭 들러본다는 유튜브, 그곳에서 인기있는 컨텐츠의 양식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그 컨텐츠가 어떤 형식이며 어떤 도구를 통해 만들어졌는지, 몇분 길이인지 어떤 내용을 어떤 대상을 향해서 만들고 있는지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10분 안되게 만들고, 세련되고 고화질의 영상으로, 눈돌릴틈 없이 시시각각 화면의 변화를 주어야 하며, 사람의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를 골고루 포함하고,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즉각적으로 줄 수 있는 유튜브 컨텐츠들이 뜨고 있다. 교회는 이런 기준에 어떤가? 10분 이내의 컨텐츠는 거의 전무하고 전달 미디어도 흐릿하며 비전문가적인 전달이 이루어지고 한 명이 나와서 30~40분 동일하고 지루한 톤의 설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온라인에 맞게 복음을 컨텐츠를 준비해야 한다. 복음서 저자들이 그 수신자들을 고려하여 복음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록했듯이, 예수님도 청자를 고려하여 말씀하셨던 것처럼 교회도 시대의 대상자들을 고려해서 그들의 변화를 연구해서 준비해야 한다.

 

2.네트워크 교회가 되어야 한다.

 

내 건물교회 중심을 탈피해야 한다. 오프라인 건물 중심의 교회는 내 건물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유의미한 활동이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그들을 내 교회 교인만드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오프라인 어느곳에 적을 두는게 의미가 있는게 아니다. 그들이 온라인에서 하나님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어 사회 곳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잡을 수도 없고, 잡아서도 안된다.

아마존처럼 희귀한 컨텐츠라 할지라도 매년 판매되고 있고 그와 같은 종류의 합을 합하면 전체 매출의 57%를 차지하는것처럼, 교회도 이 시대에 희귀한 복음 컨텐츠로 전락해버렸지만, 온라인 상에서 그 복음으로 변화되는 소수의 사람들이 나오도록 그리고 그 합이 전체 결실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개 교회별로 보면 1명이 주는 의미성은 미미하지만, 전세계를 놓고 보면 한 곳에서 1명이 나타난다면 이는 전혀 다른 결과가 된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마게도니야교회에 아가야 교회에 예루살렘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그리스도 일로 서로를 돕고 연합하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도 그와 같은 연합이 일어나야 하고, 온라인상에서는 더더욱 한 목표를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한다. 우리 건물교회 교인 만드는게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되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3. 삶으로서의 선교를 이루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건물교회 형태를 벗어나면 주님이 말씀하신 여러 가지 형태의 본질을 찾는 교회의 모습이 보여진다. 건물을 벗어나면, 주일 하루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은 6일의 삶도 중요해진다. 그곳에서도 교인이어야 하고, 거기에서도 예배할 수 있어야 하고,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오늘 우리 기독교인의 문제점은 주일 하루만 교인이고 나머지 6일은 전혀 교인이지 않은 삶을 살도록 만든 것에 있다. 세상은 더럽고, 교회는 깨끗한 곳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와야만 안식을 얻는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문제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공생애 대부분을 성전에서 보내신 것이 아니다. 세상속에서 세상 한복판에서 보내셨다.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그분의 세상속에서의 삶을 대변하는 증거이다. 예수님은 세상과 담을 쌓고 그들만 의롭다며 세상을 정죄하고 살아가는 성전중심의 유대인을 향해서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셨다. 그 중심된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울며 예루살렘아!’ 부르시며 한탄하시기도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도 동일해야 한다. 주님을 본받아 가야 한다. 6일동안 세상에서 승부를 보는 교인이 되도록 교회가 가르치자. 교회에 나와서 1시간 동안만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정죄하고 눈치주고 엄하게 대하는 것을 벗어나서, 세상속에서 6일 동안을 거룩하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자. 그리고 세상속에서 지친 그리스도인이 주일에는 형제 자매들 안에서 쉼과 평안을 누리는 다시 힘을 얻고 사명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게 하자.

일주일에 한 번만 나오는 교인되게 만들라는 주님의 명령은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제자삼으라고 하셨지 선데이 크리스천되게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평범하게 살수 없다. 그것을 종용하는 것이 교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면 된다. 삶의 컨텐츠가 예배당에 나와 앉아있는 것보다 더 중요해야 한다.

교회에서 도둑질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도 도둑질하지 말아야 한다. 세금을 도둑질하지 말아야 하고, 손님들의 것을 정직하게 지켜주어야 하고, 남의 것을 내것 삼아서도 안된다. 성전에서 거룩하다면 세상에서도 거룩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가르쳐야 하는 사명이다. 제자들을 보라.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가? 주님은 구경꾼들이 아닌 믿는 자 모두가 제자들이 되어야 할 것을 명령하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건물교회 중심에서는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은 모두 목사가 되어야 했지만, 새로운 시대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자리에서 주님과 신실하게 교제하며 자신이 하는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면 된다. 어느 나라의 주력부대가 한곳에 몰려가서 모두 패망했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곳곳에 유력한 자들이 역할을 하게 하는 균형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다. 신실하다고 여겨지는 그리스도인들을 건물에만 모아놓고 그안에서만 사역하게 한다면 세상 전도의 사명을 생각해볼 때 효율적이지 않다. 오히려 세상 곳곳에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놓여 있는 상황이 복음 전파에는 더더욱이나 효과적일 것이다. 그들이 합력하여 한 뜻을 이루는 공동체로 사역한다면 얼마나 멋진가! 전략가 하나님이 보실 때 이것이 더 멋진 계획이 아닐까? 더 이상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건물안에만 모여서 오기를 기다린다면 전략 미스다. 이제는 그래서는 안된다.

 

# 교회도 지금 시작해야 한다

메타버스 시대에 교회는 역시나 할 일이 있다. 온라인에 대한 지금의 반발심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사그러들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미 늦을수도 있다. 컴퓨터 사용하면서 666을 말하는 사람이 더 없는 시대이지만 불과 30년전만 해도 컴퓨터는 666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실제로 그렇게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메타버스 시대가 되어 현재의 조잡한 기술형태를 극복하고 실제와 같은 몰입감, 오감 체험을 이루는 시대가 되면 우리 삶의 대부분의 일들은 온라인상에서 진행될 것이다. 그야말로 메타버스 시대가 될 것이다.

페이스북이 회사명을 바꾸고 메타버스 시대를 선언한것처럼, 교회도 새로운 시대를 맞아 준비하고 선언해야 한다. 바꾸어야 한다. 지금 당장이야 소소한 변화일 수 있지만, 이런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연합하고 자본이 투자되고 마음이 하나가 된다면, 교회를 통해서 사회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시기 교회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그 시대의 부작용을 막고 보충해주고 대안이 되는 세력이 될 수 있다면, 이 역사도 교회를 기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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