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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 칼럼

길목교회 창립2주년을 지나며

by 길목교회 2022. 6. 25.

# 코로나와 함께 한 지난 2년의 삶

길목교회가 이 땅에 생긴 지 2년이 지나갑니다. 정말 빠르고도 숨가쁜 시간으로 보낸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일때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주년이 되는 지금은 코로나를 졸업하는 중이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함께 모여서 무언가를 할수 없었고, 함께 식사도 교제도 성경공부도 함께 하는 것이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왜 교회를 개척해야 했을까요? 사실 교회 개척을 준비할때에는 코로나는 예정에 없었고 시작할때 코로나가 닥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때여야 했을지에 대해서 지금은 하나님의 인도하심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교회에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건물안에서만 예배했습니다. 그곳을 벗어난 예배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신앙생활의 모든 부분을 소비했습니다. 밖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존재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는 교회 건물 밖에서도 '나를 예배할 수 있니?' 라는 근원적인 신앙인의 자세를 묻는 것 같았습니다. '일상속에서도 내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니?'라고 물으시는 주님의 새로운 사명으로의 부르심 같아 보였습니다. 

 

이 질문을 받은 교회들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해온 예배가운데 이미 나는 '하나님 전문가'였고 내 삶은 온전히 주님께 바쳐진 것으로 이해되었을터인데 이제는 다시금 새롭게 처음과도 같은 신앙의 삶을 시작하는 두려움과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또 새로운 긴장감이 흘러왔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있게 무얼 할 수 없는, 그저 진심과 동경만이 또 신뢰만이 그 길을 온전히 건너가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시험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고된 광야길을 건너 가나안땅에 도착했더니 그것이 끝이 아닌, 또 새로운 미션을 부여받고 시험지를 받아보았듯이 우리도 그런 신입생으로 섰습니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무례하고 차갑게 던진 질문은 그저 그냥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부귀로 귀향했던 야곱의 잔잔한 강물과도 같은 삶을 깨트린 디나 사건과 같이,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들에게 외쳐진 독사새끼라는 엄청난 충격어린 선지자의 외침처럼, 반드시 또 새롭게 갱신되어야 하는 우리 신앙의 필수 코스였습니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복음은 점점 힘을 잃고 변두리에만 머물러 있는 시기에, 증인이고 제자된 그리스도인들마저 사명으로 부르시는 사마리아땅보다는 평안의 예루살렘땅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했기에, 예루살렘에 박해가 일어나 뿔뿔이 흩어져 사마리아에도 또 세계 열방 끝에도 나아가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시대적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 성장이 아닌 거룩으로 사명으로

개척교회의 사명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오직 성장입니다. 그리고 그 성장의 이유는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수백번씩 듣게 되는 생존때문입니다. 생존해야 사역할 수 있고 사역해야 목회할 수 있기 때문에, 고상한 말로 포장을 하자면, 개척교회는 성장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와도 같은 부흥 성장만이 개척교회의 사명이고 사는 길이고 그것이 숙명입니다.

 

그러나 길목교회는 그런 패러다임을 처음부터 무시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건물교회로 시작하지 않았고, 성도들과 함께 나오지 않았고, 기존교회의 틀을 무시하고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위험한 시도도 했습니다. 목회자 중심성을 내려놓고 본질과 사명으로, 오직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가능한 교회의 생존을 믿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전히 응답하는 교회로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 1년간은 매일 아침이 두려운 순간이 많았습니다. 매일같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기에 오직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으로(딤후1:7) 견뎌내고 사명으로 다시금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돈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사명이 이끌어 나간다는 확신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교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이기에,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에게 붙여주시는 사람, 기회, 사역들을 우연처럼 여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있고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고 붙여주신 사람이고, 보여주신 사역틀이라면 그것을 감당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나라를 일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라고 보낸 사람 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감당하라고 연결해주신 사역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일들을 나 자신보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확신이 되면 바로 시행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하나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실까? 왜 만났을까? 기대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정말 옛날 표현처럼 신묘막측하여 놀랍고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신비로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내게 말걸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동이고 놀라움 그 자체인데,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순종했을때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경험하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존을 목적으로 했다면, 돈을 어떻게 벌수 있을지, 그리고 교회를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은 어울리지 않으니, 교회가 돈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도가 많아지는 것 뿐이기에 어떻게 성도를 많이 등록하게 할까를 고민했을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거룩한 복음전도의 열정으로 전도하고 교회에 등록시키지만,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 교회에 성도수가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하나님이 주신 본질적 사명을 잊고 사는 사람들로 변화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과의 동행의 길이 목적이라면, 거룩함이 먼저 다가오는 주제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시고 거룩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기에, 어떻게 날마다 거룩하며 주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지를 매순간 고민하며 경책하며 살아야 합니다.(딤후4:2) 지루하고도 먼 답이 없는 삶을 시작하게 되지만, 그것이 결코 지루함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그 놀라우심은 살아 운동력이 있는 말씀처럼 우리 삶에 역동적으로 늘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지난 2년의 삶을 그 역동성을 매일같이 사모하며 추앙하며 사는 삶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늘 부족하고 연약하고 쓰러지는 자신으로 인해 한탄이 대부분을 차지한, 그래서 주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는 나 였음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 새 시대를 위한 사명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어느 전도사가 교회에서 예배할수가 없게 돼 걱정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온라인예배 메뉴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무료로 모든 사람에게 공개했습니다. 그러다 온라인으로 예배하고 싶은데 장비가 없어서 못한다는 말을 듣고, 한 업체에 연락해 장비를 얼마에 줄수 있는지를 묻고 장비 신청을 받아 교회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너무나 많은 신청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러 교회에서 지원을 해주어 결국 500여개 교회 약간 못미치게 도울 수 있었습니다. 또 장비를 가진 교회가 사용법을 잘 알지 못한다 하여 세미나를 열어 도와주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성도들의 무기력한 삶이 시작되자, 온라인 줌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해외에 있는 교회에서도 성경강의 요청이 와서 머릴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더불어 말씀공부를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안에서 성도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어 힘들어질때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다, 커피트럭을 운여하시는 목사님을 보게 되었고, 제 옆이 있는 국악을 하는 집사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둘 다에게 도움이 되고 교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역이라 생각되어 바로 시작했습니다. 심방도 못하고 복음도 못 전하는 시국에, 커피 트럭을 가지고 교회 근처로 가서 지나가는 분들에게 고급 커피를 무료로 나누어 드리고 옆에서는 고품격의 국악 음악회가 열리게 했습니다. 또 오랫동안 보지 못하는 성도들에게는 커피트럭이 그곳에 찾아가 심방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심해져 교회단위에서 할 수 없었을때에는 코로나로 인해 고생하시는 의료진들을 찾아가는 것으로 바꾸어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년동안 제가 불려다닌 곳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 총회의 5개 부서에서 온라인 사역, 미디어 등의 사역과 관련하여 위원을 맡아달라고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개혁을 위해서 일하는 몇몇 목사님들의 모임에서도 도와달라고 요청이 왔고, 한국교회를 책임지고 의무를 감당하기 원하는 대형교회 중심의 목회자 모임에도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또 앞으로 새로운 목회를 계획하는 목회자들을 위한 Post M.Div 학교에서는 멘토로 사역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그 가운데 여러 언론 인터뷰로, 기독교 방송 강의와 취재도 있었습니다.

 

만나는 후배들, 선배들, 선교사님들. 그분들을 만나게 되었을때 하나님이 내게 내 재능이 필요해서 연결시켜주셨는지, 아니면 경제적인 부분이 필요해서 연결시켜주셨는지를 분별하고 그 일에 순종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이라면 놀랍게도 생각지도 못한 곳을 통해 돈이 들어오고 그곳으로 전달되게 해주셨습니다. 재능을 통한 일은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도왔습니다. 선교지에 가서 선교하는 것과 같은 일이 지금의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생각하고 그렇게 일했습니다. 

 

그 모든 시간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과 같은 기회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뚜렷하지 않은 그러나 나중에는 거미줄처럼 얽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필요하시니 시키지셨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시간도 몸도 열심히 뛰어야 하지만, 그것이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이라고 생각하기에 기쁨으로 바쁜가운데에도 감당했습니다. 

 

온라인, 비대면의 상황이 예상이 됩니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신앙의 실제가 사라지는 기술안에서 모든 것이 구현되고 이루어지는 사회가 충격적인 속도로 찾아옵니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우리가 가져온 신앙의 모습은 설 곳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의 가치관도 시각도 마음도 다 바뀌고 이제는 고리타분한 올드 컨텐츠인 기독교 신앙을 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위기감이 들고 무력감도 듭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속에 이런 시기가 이번 한번 뿐이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수없는 변혁과 변화를 경험하면서도 이겨냈고 성령의 살아있는 역사로 감당해냈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알고 준비하고 대응해야 합니다. 놀랍게도 저에게 그동안 지나쳐왔던 많은 일들이 그런 일들과 엮여 있습니다. 지금 제게 과제로 주어진 일들도 그와 같은 일입니다. 목회 일이 아니니까, 거룩한 일이 아니니까, 성경과 기도의 일이 아니니까 물리칠수 많은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준비하시길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이 없어진 신앙생활이 상상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성전이 없는 이스라엘의 삶을 준비하시고 미가와 예레미야와 에스겔 등의 선지자들을 통해 준비시키셨습니다. 나중에는 예수님을 통해 성전을 헐고 신앙생활을 하라는 메시지까지 주셨습니다. 새로운 삶을 맞닥트린 성도들의 삶을 도전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알지 못하는 고레스왕을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왕이라고 선언하시고 사용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일은 우리 생각의 범위안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온 세상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우리의 선교지이고 그 사회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기본적인 사명을 가진 사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보여주시고 인도해주실 길을 기대합니다.

너무도 미약해 날마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이런 어리석고 약하고 죄많은 사람도 하나님이 쓰심을 알기게

그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의지하고 앞으로도 나아갑니다. 

 

길목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도와주신 수 많은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함께 동역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차고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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