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역은 불0교회 청년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인원이 한 마을을 섬길수 있을 정도로 차지 않아서 본부의 협조를 얻어 장0동 교회와 한팀을 이루었다. 그래서 우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의 골짜기 한 마을을 맡아서 섬기게 되었다.
사역 가기까지 교회의 많은 청년들이 가지 못하는 것 때문에 안타깝기도 하였는데, 몇몇 청년들이 열심을 내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줘 힘을 얻을수 있었고, 그들을 위해 중보하는 마음으로 사역에 임할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그들에게는 마음속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이번 사역때에는 다시 진장을 맡게 되었는데, 사실 이제 다시는 사역은 가더라도 진장은 안 맡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래서 작년 사역때에도 끝까지 거부하다가 진지기를 맡아 간 거였는데, 올해에는 맡을 사람이 없다는 본부의 요구에 어쩔수 없이 맡게 되었다.
사실 사역을 준비하면서 한 사람을 설득해서 사역에 데려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그리고 큰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인지 알고 있는 터라, 왠만하면 편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진장을 맡으면서 온갖 부담감을 떠앉게 되었는데, 사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준비하셨던게 아닌가 싶다. 사역을 마치고 나서 다시금 열정이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사역지에 내려가서 살펴보니 마을이 두 개였다. 그래서 큰 마을을 장0동교회의 전도사님께 맡겨드리고, 사역원들은 교회인원을 중복배치해서 나누었다. 사역지를 가서 가장 중요한게 이 인원배치가 아닌가 싶다. 성격도 고려해야 하고, 마을 규모와 그 사람의 행동능력도 고려 해야만, 바쁜 사역 일정 가운데 효과적인 사역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어긋나면 사역의 절반의 시간을 놓치는 것과 같은 안타까움이 발생한다.
이 인원배치는 끝까지 진장의 권한인데, 사역 끝나는 금요일 산타사역때까지 어느 사람을 세우는게 가장 효과적이고 긍정적일지를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이만저만 어려운게 아니다. 여하튼 이번 사역때에는 두 교회를 고려해야 하고, 두 교회의 리더십이 동시에 참여했다는 부분 등등 여러가지로 어려운 요소들을 많이 가졌음에도 장0동교회 청년들의 섬김과 전도사님의 겸손의 능력으로 큰 어려움없이 잘 해낼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사역은 참으로 독특한 사역중의 하나였다.
우선은 날씨가 이전 96년 사역에 참가한 이래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날씨였다. 원래 화요일 경로잔치가 있는 날이면 항상 여름의 뙤악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어르신들 안마에 부채질에 웃음기 가득한 모습등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저녁때쯤에는 거의 쓰러질 상황이 되는데, 이번 사역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특별한 이유 때문이었다.
경로잔치가 있는 화요일은 거의 8.15 광복절 부근인데, 이번 사역 기간은 경로잔치 하는 화요일이 광복절과 겹치게 되었다. 그래서 면에서 체육대회 행사를 점심시간에 잡아 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이 사실로 인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많이 했는데, 사역을 이끄시는 목사님의 지혜로운 선택과 결정으로 면 체육대회 시간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우리 행사를 할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로 오후 느즈막히 경로잔치 시간을 잡게 되었는데, 유난히 햇빛도 비추지 않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해서 유래없는 시원하고 힘들지 않은 경로잔치를 치르게 되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해마다 있어왔던 화요일 사역뒤 집에 가겠다는 사역원들이 한명도 없었다. 사실 사전에 내 권리를 포기하는데 동의하지 않고 억지로 떠밀려 내려온 사역원의 경우, 사역방식의 차이와 여러가지 주관적인 생각 때문에, 화요일 힘들고 어려운 경로잔치가 끝나면 참고 참았던 불만을 폭발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금요일 마을잔치때에도 이런 사역의 느슨함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날씨가 많이 도와주었던 것 같다. 목사님의 유화정책적인 인도도 한 몫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역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지만 기억나는 목요일 축호전도 이야기만 정리해볼까 한다. 우리가 맡은 마을은 신기마을이었다. 베이스 캠프에서는 차로 5분거리에 있는 마을이었는데, 거의 시골 마을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있었다. 이 신기마을은 약 54가구 정도로 이루어진 인심좋은 마을이다.
목요일 오후 약 6시간 정도가 축호전도 시간으로 주어지는데, 나는 봉고 운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사역원들을 데려다 주고 왔다 갔다 하다보니 전도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또 옆 마을 사역자들도 태워야 했기 때문에 내게 전도할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은 약 2시간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옆 마을 사역자를 베이스에 복귀시키기까지 약 3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시간이 아까운지라, 내가 맡은 마을을 찾아서 복음 전할 사람 주시기를 기도하고 집들을 정탐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데, 그동안 다니면서 젊은 아주머니 부부라는 이유로 소홀히 여겨졌던 집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집인줄 알고 담대하게 외치고 들어갔다.
"계세요? 어르신?”
젊은 아주머니께서 눈이 아프신듯 반쯤 감으신채로 나오셨다. 인사를 드리고 소개를 하니, 어르신들께 이야기 많이 들었다고 했다. 화요일, 수요일 있는 잔치때 한번도 참석을 하지 못하셔서 어르신들께서 하시는 칭찬 이야기를 들으신 것 같았다. 말을 이어가기 위해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집안 전체가 눈병에 걸렸다고 들어오면 안된다고 말리셨다. 하지만... 나는 들어가야 했다. 들어가보니 20살 약간 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한명 있었다. 약간 이상하다 싶었는데, 초등학교때 교통 사고로 인해 자폐증상이 있다고 하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구석에 왠 신전이 차려져 있는데, 살펴보니 남묘호랑갱교였다. 그걸 보니 하나님께서 이 집을 붙여주신 이유를 더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분이 20살때쯤부터 남묘호랑갱교의 일파인 한국S**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약 30년간 그걸 믿어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집안도 가난한데, 자녀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사탄마귀가 이집을 장악하고 있다는 생각에 화도 나고 믿지 않는 이 가족때문에 안타깝기도 했다.
이제 복음을 전하고 결단을 요구하려고 하는데, 사역원을 데려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이럴수가... 그때의 안타까운 마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역원을 본부에 데려다주어 청소년 사역을 참가시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사역인지라 머뭇거릴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주머님께 금방 다시 오겠노라고 하고 복음의 핵심을 전하지 못한채 자리를 나와야 했다.
아주머니는 떠나가는 나에게 예수님 믿으라는 소리는 하지 말라며 오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자리를 나와야 한다는 사실때문에 사실 조금은 망설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바로 사역원을 데리러 나갔고, 사역원을 데려다주고 다시 마을로 들어와서 그 집에 가려는데, 내가 맡은 집의 다른 분들 생각도 났다. 그 아주머니에게 가면 결판을 내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것 같아 한집이라도 더 들어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댁에 들어갔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대로 복음을 전하였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심각하게 복음을 받아들이셨다. 할렐루야! 사역을 오래하니 이렇게 복음을 전하였을때 도전을 받아들이고 믿겠다고 하시고 영접기도를 진심으로 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정말 신이 난다.
처음 사역때에는 정말 믿지도 않으시면서 그냥 우리가 좋아서 장난식으로 응답해 주시는 분, 복음을 거부하는 분 등 여러 경우들을 많이 만나 이런 온전한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데, 사역의 해가 가면서 복음을 전하는 시간은 더욱 진지해지고 결실을 맺는 듯 해서 참으로 기쁨이 컸다.
하늘 생명책에 할아버지와 할머님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기뻐하고 얼른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다. 다시 아주머니의 집에 도착했다. 인기척이 없고 길거리 전등이 없어서 매우 어둡다.저녁이라 어두운 시간이지만, 밖에서 ‘아주머니!'를 연신 외쳤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안나오신다. 분명 이 시간에 갈데가 없으신데, 안나오신다. 그리고 남자아이가 나와서 엄마 잔다고 그냥 가라고 한다. 이럴수가... 살짝 안방을 보니 이미 자리를 뜨셔서 작은방에 숨어 계시는 것 같았다. 그냥 갈수가 없어서, 정말이지 그냥갈수가 없었다. 문 앞으로 다가가서 잠시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전에 보지 못하던 여자아이가 나왔다. 알고보니 남자아이의 여동생이었다. 나이는 21살. 이름이 수미였는데, 어머니 없다고 그만 가라고 했다. 난 어머니 뵙고 가야겠다고 계신거 안다고 잠시만 뵙자고 청하였다. 그런데도 끝까지 나오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배타고 반대방향으로 갔을때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 때를 생각하니 더더욱 포기할수 없어서 나는 과감하게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이 집에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주머니에게 전하지 못하면, 딸에게라도 전해라…’ 그래서 잠시 수미에게 얘기좀 하자고 했다. 계속해서 어머니 없다고 잔다고 그냥 가라는 얘기 뿐이었지만, 나를 소개하고 그 아이의 말문을 진정시킬수 있었다. 수미는 신원면에 있는 미용학원에서 미용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방학이고 그래서 집에 와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왠 난데 없이 내가 나타나서 소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난 강한 확신으로 복음을 전했다. 내 삶 가운데 나타나셨던 하나님 모습 그대로, 죄사함에 대해서, 그리고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수미의 꿈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강권하였다. 수미도 어머님이 믿는 거기에 대고 매일같이 헛된 주문을 외고 있었다. 부모님이 믿으시니까 그 영향을 받아서 같이 믿게 된 것이다. 수미의 대답을 기다렸는데, 못믿겠다고 했다. 그래서 성령의 주시는 말씀들을 계속해서 전하였다. 두번째 대답을 기다렸다. 나중에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지금은 귀찮으니 그냥 가라는 뜻이었다.
난 더더욱 간절히 속으로 중보하며 아이에게 더 큰 결단을 요구했다. 그냥 예수 믿을테니 가라는 식으로 끝내서는 더더욱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탄 마귀가 예수님 못믿게 강하게 나오니 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강하게 나갔다. 그리고 수미에게 예수 믿는 것 그 이상의 결단과 대가에 대해서 요구했다. 니가 만약 예수를 믿게 된다면, 지금 하는 이 헛된 종교의식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어머님이 왜 안하냐고 해도, 집에서 미움을 받게 된다 해도 예수 믿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것, 이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선택을 요구했다.
“예수님 믿어볼래?”
수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할렐루야. 부정적인 메시지였지만 그 말에 너무 기뻤다. 수미가 움직인것이다.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믿음에 대해서 수미와 이야기 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믿을수 없을 것 같았던 아이가 믿음을 가지게 된 사건을 내 삶가운데 겪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러가지 사건들을 간증으로 이야기하며 권면하였다. 그리고 간절하게 수미에게 선택을 제시했다. 여호수아가 그랬던 것처럼,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나처럼 믿어라. 선택해라! 잠깐동안 침묵이 흘렀다. 곧이어 수미 입이 열리며 한 마디 내 뱉었다.
"예수님 믿을께요!"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수미야! 니가 예수님 믿기로 결정했다면 니가 예수님께 직접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영접기도를 알려주었고, 수미 입으로 영접기도를 드렸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백까지 하게 되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능력에 무한히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수미에게 다시 한번 믿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일을 알려주었다. 우상숭배는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그리고 기도하는 법, 교회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짧은 시간에 많이 안타까웠지만, 수미는 확신있게 절대로 다시는 주문을 외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나도 기도의 약속을 하고 집을 나왔다. 베이스 캠프로 복귀하는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수가 없었다. 잃은 양 한마리를 찾은 목자의 심정이 이랬을까? 탕자를 다시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랬을까? 니느웨 성에 복음이 전파될때의 하나님의 마음은 이랬을까?
역시 복음은 우리 인생에게 가장 복된 소식이다. 그리고 그 소식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가치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열정과 헌신을 줄수 있는 것도 역시 복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준행하며 사는 삶.
꾸준히 그렇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 삶에 항상 불만족이지만 언젠가는 그 불만족이 내 삶의 이유와 목적이 되어 아름답게 꾸며질 날이 올것이라 생각한다.
- 길목의 2006년 경남 거창 사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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