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주 목사 (길목교회)
서기 사용의 기원
올해가 2022년입니다. 이 말은 어떤 기준점으로부터 2022년이 흘렀다는 말입니다. 이런 기준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전세계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서력기원, 줄여서 ‘서기’라고 부르는 예수님이 탄생한 해를 기원으로 하는 연호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한 해를 기점으로 이전과 후를 구분하는데 이전의 시대를 B.C 영어로 예수 이전의 시대 Before Christ라 부르고, 이후를 A.D라고 부르는데, 라틴어로 Anno Domini 예수님의 시대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전 세계는 우리 예수님이 탄생한 해를 역사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후 6세기 동로마제국의 수도사였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라는 사람 때문입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은 ‘로마제국이 건축된 후 몇 년’ 이런 연호를 사용하거나 황제가 재임한 해를 기준으로 ‘무슨 황제 몇 년’ 이런식으로 황제연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동로마교회는 특별히 주후 3세기에 통치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연호>를 따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시간도 한참 지난 황제 연호를 왜 사용하고 있었을까요? 왜냐하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박해한 마지막 황제였는데, 순교자들의 피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 왕의 재임을 기준으로 년도를 그때까지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후 6세기 교황이었던 <요한1세>가 부활절 연대를 세는데,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를 기준으로 한 연호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해서 <디오니시우스>에게 다른 방법을 마련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래서 <디오니시우스>는 예수님을 기준으로 한 연호를 만들었고 그것이 시간이 흘러 전 세계에 퍼져서 오늘날까지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디오니시우스>의 예수님을 기준으로 한 연호를 온 나라가 바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과 같은 통신이 발전된것도 아니고 서로 활발한 교류가 빠르게 이루어지던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준은 11세기 정도나 되어서야 유럽에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18세기에 와서는 지구상의 나라에서 대부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그 전까지는 대부분 자국의 왕을 기준으로 한 연호를 사용하거나 다른 시기를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때에는 일본 천황의 연호를 사용하다, 이후 1945년 해방되고 1948년 정부수립후에는 공식적으로 단군왕검을 기준으로 한 ‘단기’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서양세계와 교류하는데 필요성이 대두되고 해서, 1961년 법률로 서력기원을 사용하기로 하고, 1962년부터 서양인들의 연호라고 부른 ‘서력기원’을 사용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0년에 태어나셨을까?
그렇다면 지금은 서기 2022년이니까 예수님은 지금으로부터 2022년전에 이 땅에 태어나셨을까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살펴볼 지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장1절에는 예수님이 “헤롯”왕 때에 탄생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2:1]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이 헤롯은 헤롯대왕이라고 불려지는 사람으로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유대를 통치했던 왕입니다. 이 당시 로마제국의 황제는 <옥타비아누스>입니다. 성경에서는 로마원로원에서 옥타비아누스를 존귀한자라고 칭했던 아우구스티스의 호칭을 사용해 <아구스도>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눅 2:1]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헤롯대왕이 통치하고 있을때 예수님이 태어나셨고, 헤롯대왕은 자신이 아닌 다른 왕이 태어났다는 말에 위기감을 느껴 두 살 이하의 모든 유아를 학살하는 엄청난 일을 자행합니다. 겨우 아기인데 그와 같은 일을 했다니 믿기 힘들다는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헤롯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헤롯은 유대 나라의 왕으로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은 다른 나라를 속국으로 통치할때 총독을 보내어 다스리게 합니다. 헤롯은 유대 나라에 총독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으로 임명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헤롯이 로마제국의 황제들과 관계가 너무나 좋았고, 대단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헤롯이 유대 나라를 통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에돔나라(이두매)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내도 에돔 출신인 자신을 깔보아서 자신이 혹시라도 잘못될 경우에는 아내도 죽이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자신의 왕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해 아내와 세 아들을 반역죄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주전 37년에 이전 왕을 물리치고 왕권을 겨우 잡았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가장 좋아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 <성전>을 만들어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헤롯성전>이라고 불리우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는 성전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성전이 바로 이 헤롯성전이었습니다.
그정도로 자신의 출신과 유대인을 통치하는 문제를 예민하게 생각했던 헤롯에게, 새롭게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은 헤롯에게는 경기를 일으킬만한 소식이었습니다. 이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유대인에게 혼란이 올것이고 통치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때는 정확히 언제일까요? 그것을 알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 있습니다. <유대 고대사>를 기록한 요세푸스의 기록에 헤롯대왕이 죽은 해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But Herod deprived this Matthias of the high priesthood, and burnt the other Matthias, who had raised the sedition, with his companions, alive. And that very night there was an eclipse of the moon. - Flavius Josephus (Antiquities, 17.6.4)
그것은 헤롯이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산채로 불살라 죽인 일이 있었고 그 일 때문에 헤롯이 얼마 안있어 죽었는데, 대제사장을 죽인 그날 밤 월식이 일어났다는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 월식이 언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천문학자들은 주전 4년 3월12~13일에 월식이 일어났음을 밝혀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헤롯대왕이 살아 있을때에 탄생하셨고, 헤롯대왕은 주전 4년에 죽은것이 역사적 사실로 밝혀지기 때문에, 적어도 주전4년 이전에는 탄생하신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후6세기에 <디오니시우스>가 예수님 탄생하신 해를 기준으로 주님의 해를 기준삼았는데, 그때 결정했던 예수님의 탄생 시점에 대한 파악이 잘못되지 않았나 추측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적어도 주전 4년에서 6년정도 사이에 탄생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오니시우스>가 정한 기준이 잘못되었다 해도 전세계가 사용하는 것을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걸 감안해서 이해하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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