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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 칼럼

성경의 역사

by 길목교회 2022. 7. 3.

이길주 목사 (길목교회)


우리말로 성경(聖經)은 한자어로 ‘거룩할 성(聖)’ 자에 ‘날실 경(經)’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날실 경 한자는 베틀에서 세로로 놓은 날실을 가로로 씨실이 오가며 옷이 직조되어 완성되는 의미에서 세로로 놓인 날실이 그 기초가 되듯이 어떤 것의 근간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종교나 사상으로 와서 어떤 종교의 근본이 되는 책이나 글을 ‘경(經)’으로 부르게 된 단어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거룩한 경전’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성경을 영어로는 Bible로 씁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 Biblia와 그리스어 Biblos에서 온 단어입니다. 이 단어들은 ‘책’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들입니다. 이 단어가 책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아마도 책과 두루마리의 재료로 사용되었던 파피루스를 수출한 곳이 레바논에 있는 비블로스(Byblos)항구였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세 가지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구약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일부분은 아람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신약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헬라어 성경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라고 생각하면 되고, 아람어는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등이 사용했던 언어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로 끌려가서 아람어를 사용했을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서는 히브리어보다 아람어를 더 많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신약시대 오면서 헬라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그들의 언어인 그리스어가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이후 로마가 헬라뒤에 세계를 지배하고 나서며 그들의 언어인 라틴어가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미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었기에, 로마 시대에도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로마가 다스리는 예수님시대에도 이후 제자들의 시대에도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시기였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 시대에 사용했던 성경은 ‘70인역’ 성경입니다. 이것은 헬라제국의 프톨레미2세 왕에 의해서 편찬되었습니다.

이집트 헬라제국의 왕 프톨레미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자신의 도서관에 세상에 알려진 모든 책을 비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도서중에는 히브리인들이 귀중하게 생각하는 구약 성경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프톨레미는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그 당시 언어인 그리스어로 번역할 것을 지시했고, 예루살렘에서 72명의 유대인 학자가 선발되어 72일동안 번역을 각각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72일 뒤에 번역을 비교해보았는데 모두 다 동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옵니다. 여기에서 70인역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때 번역된 부분은 모세오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에 구약성경 모두가 번역되기까지는 2세기나 걸렸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 당시에 그리스어로 된 이 70인역 성경을 이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는 부분을 보면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약간씩 어구가 다른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어로 된 구약성경 70인역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은 여러명의 사람이 여러 시대에 걸쳐 쓴 내용이 모여져 있습니다. 이 여러 사람의 글들이 성경으로 인정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1세기 역사가였던 요세푸스가 <아피온에 대한 반론>이란 책에서 구약성경을 언급하고 있기때문에 그 이전 구약성경의 목록이 확정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인은 과거의 모든 사건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22권의 책을 갖고 있으며, 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르게 믿고 있다”

요세푸스가 언급하는 22권의 책은 오늘 우리가 보는 구약성경 39권과 같은 내용의 책입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구약성경의 목록을 확정한 것은 주후90~100년경 얌니아에서 열린 공의회에서입니다. 이전에 사람들이 경전으로 알던 묵상해 온 39권의 책들을 경전으로 확정을 했습니다. 주후90~100년경 얌니야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구약성경 목록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이미 구약성경은 확정되어 사용해왔을 것으로 추청됩니다. 그리고 주후70년 로마의 침공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고 예배도 제대로 드릴수 없고 성경도 많이 사라진 시기에, 위기감을 느끼고 성경을 보존해야 할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런 이유로 얌니아에서 구약의 목록을 확정해서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성경 39권 정경목록 확정 - 주후90-100년경 얌니야 공의회

1947년 이전에는 히브리어 성경 사본이 거의 있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원본은 사라졌구요. 그 당시 종이에 썼다면 그 종이가 얼마나 갔을까요? 오늘날과 같이 100년 간다는 중성지도 없었던 시기니까 금방 사그라들었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그 원본을 보고 기록한 사본이 생기게 되었고, 시대를 거치면서 그 사본을 베낀 사본들이 생기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사본을 만들 때 원고를 매장하거나 폐기하기로 규칙을 정했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사본들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해사본

1947년 사해 근처의 쿰란 동굴에서 엄청난 양의 구약성경 사본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사본들은 가장 오래된 사본들이었고 주전2세기경 기록된 성경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 쿰란 동굴에는 주전150년경부터 거기 살았던 에세네파 사람들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에세네파는 주후 66년경부터 로마에 의해 핍박이 시작되자 쿰란 동굴에서 함께 생활하며 성경을 기록하며 보존해준 것입니다.

쿰란동굴

이 사해사본 덕분에, 그리스어로 된 70인역 성경이 히브리어 성경을 제대로 번역한 성경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70인역 성경과 사해사본을 비교해본 결과 히브리어 성경을 제대로 번역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까지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 사본은 주후850년에 발굴된 히브리어 구약성경이었는데 사해사본의 발견으로 인해 이보다 1000년 더 오래된 사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1세기 후반에 9명의 저자가 쓴 27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네 권은 예수님의 삶에 대한 복음서이고, 이중 마가복음이 주후64~65년경 마가 요한에 의해 가장 먼저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 5:13>에서 마가 요한이 자신과 함께 있음을 말하면서 그를 자신의 아들로 칭하고 있는데, 베드로가 애제자인 마가 요한과 로마에 있으면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뒤 마태와 누가가 이후 시간이 좀 흘러 주후80~90년 사이에 복음서를 기록했고, 주후 90-100년 경에는 요한복음서가 기록되었습니다. 바울과 야고보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 편지를 써서 보낸 서신서가 있고 이것들은 주후1세기 중반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주후100년이 되기 직전 집필되었습니다.

주후90-100년경 얌니야에서 구약성경 39권을 확정한 것은 다행이지만, 이때 이 결정과 함께 유대인들은 그리스어 성경을 배격하고 히브리어 성경을 사용하기 위한 결정이었고, 그리스도인들을 유대인 공동체에서 분리해내는 결정을 내린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안타까운 회의였습니다.

1세기 말까지도 공인된 신약성경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사도들의 저술이라고 하는 위조 저작문들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복음서만 해도 50권이나 유포되었고 야고보의 비서, 도마복음, 바울의 묵시록과 같은 위작들이 권위있는 사도들의 이름을 단 채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바른 신앙을 위해서 교회 공동체는 신약성경을 확정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영지주의자들의 이단문서

주후 393년 히포에서 열린 교회회의에서 신약성경 27권의 목록이 공식적으로 정경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후 397년 카르타고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이 목록이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선언되었고 비준되었습니다.

신약성경 27권 정경목록 확정 - 주후393년 히포회의/ 397년 카르타고공의회


기독교인들은 주후 64년경 네로황제에 의해 대규모 핍박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250여년동안 10번의 큰 핍박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후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인정하기까지 핍박가운데 있었습니다.

라틴어 벌게이트 성경

이후 70인역만큼이나 큰 영향력을 끼친 성경번역본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은 5세기 초에 라틴어로 번역된 ‘벌게이트’(대중적인 판, 백성의 언어라는 뜻)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로마 교회가 1500년넘게 사용한 성경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후의 대다수 대중들은 라틴어를 알지 못했고, 예배당에서 봉독되는 이 라틴어 내용은 주교들만 볼 수 있는 일반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성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주후 14세기 영국의 위클리프라는 사람은 라틴어로 된 성경을 그 당시 언어인 영어로 번역한 성경을 내어놓습니다. 이 당시는 인쇄기가 발명되기 전이어서 손으로 필사한 성경을 내놓은 것입니다. 1382년 위클리프성경 이후 1526년에는 15세기 영국의 틴데일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원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성경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화형에 처해지고 그가 가진 성경들은 불태워졌습니다.

존 위클리프
윌리엄 틴데일


* '성경번역의 역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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